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 (문단 편집) == 진상 == 시간이 지난 [[2019년]] [[10월 15일]] [[이춘재]]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자백하면서 추가로 자백한 4건의 살인 사건 중 한 사건이 이 사건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재조명되었다. 이춘재는 당시 '''김 양을 성폭행 후 살해해 시체를 소지품과 함께 놔두었다'''고 자백했다. 이춘재의 주장일 뿐이지만, 그냥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 [[자살]]을 하려고 산에 갔다가 피해자가 그를 보고 도망치자, 마음을 바꿔 자신이 그동안 저질렀던 사건들이 탄로나는 것이 두려워져 김양을 숲속으로 끌고 가 범행을 했다고 한다. 결박할 때 쓴 줄넘기용 줄은 처음에는 자살용으로 가져간 것이라고 하다가 결국 김양이 소지하고 있던 줄넘기로 김양을 묶었다고 말했다. 김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그 장소로부터 50m 떨어져 있는 풀이 우거진 곳에 유기했다는 것이다. 8차 사건 재심에 증인으로 참석해 이를 밝힌 그는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건을 벌이고 난 후 나름대로 후회했다. 관계된 모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며 "제가 자백함으로써 세상에 드러났다. 반성하고 있다"고 형식적으로나마 사과의 뜻을 전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110216374675826&outlink=1&ref=https%3A%2F%2Fsearch.daum.net|#]] [youtube(6LCpjrPxp-E)] [[http://naver.me/52P1aeOI|'줄넘기용 줄로 결박된 뼈' 발견하고도 모른 척...경찰 사체은닉까지(연합뉴스, 19.12.17)]], [[https://news.v.daum.net/v/20191217195511176| '줄넘기용 줄 묶인 유골' 나오자..."삽 갖고 와" 지시(MBC. 2019.12.17.)]], [[https://news.v.daum.net/v/20191217195520180|"차라리 죽었다 말해주지 그랬나"...유족들 '분노'(MBC. 2019.12.17.)]] 이후 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사건 5개월 후인 1989년 12월 21일 유류품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실종신고된 아이의 이름이 쓰여진''' 책가방, 신발주머니, 샌달, 양말, 팬티, 필통, 줄무늬 셔츠, 실내화 1짝, 탬버린 등 피해자가 마지막까지 소지했던 모든 물건이 거기 널려있었다. 그런데 담당 경찰관이 이것을 보고도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622932_24634.html|'''적극적으로 은폐를 지시''']]했을 뿐 실종자 가족에게는 전혀 알려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다음 날에는 작은 손목뼈까지 찾아냈지만 시신을 그냥 [[암매장]]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게 경찰인지 범죄자인지 헷갈릴 지경. 당시 화성 일대를 순찰하는 민간인 방범대 대장이었던 주민이 [[1989년]] 초겨울쯤 형사계장 이씨와 야산을 수색하다가 줄넘기용 줄로 결박된 양손 뼈를 발견했으며 형사계장이 유골 발견 후 부하 직원에게 '''"삽을 가져와라"'''고 지시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 형사계장이 김 양의 '''[[제사]]를 지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런 행동은 눈꼽만큼이라도 양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죄책감이 들긴 드는데 진실을 밝히고 처벌을 받을 용기는 없어 그걸 조금이라도 씻어내고 '그래도 이 정도는 해줬잖아'하고 [[자기합리화]]하기 위한 비겁함에서 온 행동이었다고 봐야 한다. 정말로 양심이 있었다면 가족에게 진실을 밝혔어야 했고, 세월이 흐른 뒤에 사실이 들통난 후에라도 뒤늦게 [[양심선언]]을 해야 했을 것이다. '''골프 치고 다니며 안락한 은퇴생활을 보내다가, 연습장에 찾아온 기자에게 __“얘기나 마나 나는 모른다니까. 몰라요, 나는. 나는 모른다니까”__라고 뻔뻔한 모르쇠로 일관하는 게 아니라.'''(2019년 12월 MBC 보도) 당시 화성경찰서 형사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형사계장이 김 양 제사를 지내는 걸 직접 보진 못했지만 들어서 알고 있다. 당시 쉬쉬하면서 공공연하게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고 전했다. 일요신문은 이런 이야기를 알고 있는 화성 주민들도 찾아냈다. 화성에서 [[공인중개사]]를 30년 넘게 해온 어느 이는 “형사계장에게 직접 듣진 못했지만 전해 들어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쯤 되면 오직 가족만 모르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셈이다.[[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61698|#]] 범인 이춘재는 살해 이후 피해자의 옷 등을 현장 주변에 던졌다고 진술했다. 살해 사실을 숨기기 위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유류품이 발견된 __바로 다음날__인 1989년 [[12월 22일]] 경찰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이렇게 기록돼 있다. >가출인의 '''옷이 신발주머니 속에 정리돼 넣어져 있어''' 불상인이 가출인의 옷을 새로 구입 내지 사전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게 한 후 근처에 버린 것으로 보여 단순 가출로 사료됨. 처음부터 조작과 은폐를 작정했음을 알 수 있다. 30년이 지나서야 경찰들은 사실 그때 어땠는지에 대해 "속옷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현장만 보면 현정이가 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실토했다. 또 경찰은 [[12월 25일]](유류품 발견 4일 후) 김 양의 아버지와 사촌언니를 조사하면서 딸이 [[줄넘기|줄넘기용 줄]]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했고 김 양의 아버지는 평소 김양이 줄넘기를 좋아해 가방에 줄넘기용 줄을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다고 대답했다....'''고 알려졌는데, 이것도 조작이었다.''' 수사보고서를 보면 같은 날 조사했다는 곳의 장소가 두 가지로, 서로 다르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예 해당 일자에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없었고, 진술조서에 찍힌 도장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 '''이듬해인 1990년 봄 직접 경찰서로 간 적이 있고, 그 다음날 경찰이 집으로 찾아왔을 뿐이었다. 이때 와서는 '잘 살고 있네', '걱정 안 해도 되겠네'하는 아주 가관인 말을 하고 갔다고. 이 두 건의 수사 기록은 특이하게 모두 손글씨로 적혀 있으며, '''작성자로 나온 경찰은 김 양의 사체를 은폐한 혐의로 입건된 장본인'''이다. 이쯤 되면 대략 시나리오가 짐작이 간다.[[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648092_32524.html|#]] 또 사촌언니 역시, 당시 12세 어린아이가 경찰서에서 혼자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는 식으로 되어있는데 말이 안 된다. 사촌언니와 그녀의 부모는 경찰서에 간 기억 자체가 없다고 증언했다. 당시 다니던 포천의 초등학교에 당시 경찰이 두 차례 찾아온 적이 있을 뿐이다. 이쪽의 조서에도 줄넘기 관련 질문이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 사촌언니는 '당시에는 교통 수단이 부실해서 김 양의 집에 갈 수도 없었고 간 적도 없었으며 12살치고는 너무 구체적인 인터뷰 내용'이라고 [[그것이 알고싶다]] 인터뷰에서 혀를 찼다. 그럼 왜 경찰이 서류까지 [[주작]]했느냐? 왜 경찰이 질문하고 경찰이 가족인 것처럼 답변을 해서 만들어냈느냐? 시신을 발견해 놓고 그 학생과 상관이 없다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 '진술서'를 잘 살펴보면, 가족이라면 도무지 할 수 없는 대답들만 가득했다. 예를 들자면 느닷없이 김 양이 "아폴로 과자를 잘 먹냐"고 묻는다. 심지어 '초코크림맛'이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면서, 사고 당일 김 양이 "아폴로 과자를 갖고 있었는지" 함께 질문한다. 아폴로 과자는 그 해 12월 21일 김 양의 유류품이 발견됐을 당시 함께 나왔던 것이다. 가족에게 유류품 발견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던 경찰이 증거물에 대해 물어봤다고 써놓은 건데, 아버지는 경찰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는 아폴로 과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또 해당 경찰이 "학교 준비물로 줄넘기를 가지고 갔는지" 물어봤고, 아버지 김 씨는 "갖고 가지 않아 집에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적혀 있는데, 평소 김 양은 줄넘기를 좋아해 항상 들고 다니는 아이였다. 역시 아버지는 경찰에서 줄넘기와 관련한 질문을 받거나 대답한 적이 없었다.[[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648093_32524.html?IsAutoplay=Y|#]] 김 양의 아버지는 줄에 대한 질문도 당시에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기회가 몇 번 있었음에도 유류품이 발견됐다는 사실조차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5&aid=0002961094|#]] 핵심 물증인 줄넘기 줄을 발견하고도 은폐하면서 뒷날 책임이 제기될 경우, 마치 관련 조사를 한 것처럼 근거를 남겨둔 셈이 된다. 또 경찰은 그동안 '행방불명자'로 규정했던 김 양을 사촌언니에 대한 조서에선 '가출인'으로 바꿔놨다. 범죄 관련성이 아예 없는 것처럼 몰아간 것이다.[[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today/article/5648572_32531.html|#]] 사건 발생 당시에는 아직 화성 지역에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진행 중이었고 경찰도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화성 연쇄살인과의 연관성을 의심해야 한다. 더구나 실종 당시에는 피해자의 나이가 너무 어려 연쇄살인과 연관짓지 못하고 단순 실종으로 처리했다고 해도 1년 후 유류품 발견 현장 가까이에서 14세 여중생(중학교 2학년)을 엽기적으로 강간 살인한 9차 사건이 발생했으니 상식적으로도 [[소아성애]] 등 두 사건의 연관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데도 경찰이 이 사건을 진행 중이던 연쇄살인 사건과 연관시키지 않고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60033_24634.html|실종자의 속옷이 발견되었음에도]] 수사를 재개하거나 증거물과 기록 등을 영구보관하지 않았다. 단순 실종으로 처리했다는 건 상부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하다. 처음에 일부 진실만 알려졌을 때에도 김 양의 아버지는 왜 유류품을 발견했는데도 단순 실종 사건으로 처리했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 친척 중 하나는 '유류품까지 은폐하고 실종이라고 모르쇠한 경찰이 시신은 숨기지 않았다는 보장이 있냐'며 경찰에게 따졌다고 하는데 정말 믿기지 않게도 이 말이 '''적중하는''' 너무도 끔찍한 진실을 장장 30년 만에야 마주한 뒤 유족들은 극심한 충격에 식음을 전폐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이춘재의 자백으로 한 차례 충격을 받았다가 경찰들의 만행이 드러난 후부터는 모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어머니는 딸을 데려오라고 헛소리를 하고 아버지는 ‘경찰은 누가 잡아야 하냐’ ‘딸을 두 번 죽였다’면서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4109494&code=61121211&cp=du|#]]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14&aid=0000988406|#]]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